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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을여행2(농촌관광 리더반교육) 2007/04/16
작성자 이삭가전통식품 (ip:)
  • 작성일 2015-04-28 21: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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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54
  • 평점 0점
신라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9시에  버스를타고 경주불국사로 향하였다.여고 2학년 수학여행으로 갔던곳....몇년만인가~26년...헉! 하긴..마흔이 넘어 세아이의 엄마가 되었고,큰딸이 고3인데....26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이곳을 찾게 될줄이야.....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 선조들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뛰었났는가~새삼알게되었다.믿거나 말거나한 전설들도 참으로 재미있었다.
◀석가탑                다보탑▶


불국사(佛國寺) 다보탑, 석가탑에 얽힌 아사녀(阿斯女)의 전설 이다.백제(百濟)의 석공 아사달(阿斯達)은 많은 사람의 칭찬 속에서 불국사의 동탑인 다보탑(多寶塔)을 완성하고 서탑(西塔)인 석가탑(釋迦塔)을 만들기에여념이 없었다.
고향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그의 아내 아사녀는 그리운 님을 만나러 서라벌의 불국사로 찾아왔다. 아름다운 이 각시가 아사달의 아내라는 말을 들은 주지 스님은 낭패한듯 말했다.
"지금 부인의 낭궁님께서는 심혈을 기우려 명탑을 만들고 계시는데 지금 부인께서 나타나시면 그 정성이 부인께로 기우러져서 탑의 완성에 지장이 있을 듯 싶습니다."하고 간청하였다.
아사녀는 예술가의 아내였다. 남편의 예술을 위하여 탑이 완성될 때까지 영지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탑이 완성되면 그 그림자가 영지에 비칠것 이라는 말을 들었다. 머나먼 곳에서 님을 찾아 왔건만 그리운 님을 지척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아사녀는 날마다 영지물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느날 휘영청 밝은 달이 못안을 비출 때 그 물속에서 기기묘묘한 하얀 탑이 비쳐져 있었다.
아사달이 이룩한 다보탑이였다. 아사녀는 너무 반갑고 감격하여 "아사달님!" 부르며 물속에 뛰어 들어 탑을 껴안았다. 그리움에 지쳐서 탑의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석가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아사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 왔으나 그리운 아내는 물속에 시체로 누워 있었다. 아사달은 미친듯이 아사녀를 부르며 물속으로 뛰어 들다. "내가 이제부터는 예술도 생명도 다 버리고 다시는 당신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물에 잠긴 아사달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이었다.
이 못에 그림자가 비쳤던 다보탑은 일명 유영탑(有影塔)이라 하고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던 석가탑은 일명 무영탑(無影塔)이라 부르게 되었다.
비록 전설이지만 마음을 울리게한다.그 애틋한사랑이 지금까지불국사 석가탑,다보탑에 흐르고 있나보다.영원의 사랑이기에.......

  일주일후 ~조별로 보성대한다원과 낙안읍성,선암사에 다녀오기로
했다.새벽에 일어나 대전 약속장소로가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워낙 여행을 다녀보지 못한 난~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얼마나 흥분이되던지...마냥 좋았다.그런데 너무 긴시간동안 버스를타니 온몸이 굳어져오는 느낌이다.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가다보니 어느새 녹차밭에 도착했다.녹차밭으로 가는길!!!쭉쭉뻗은 삼나무 길~왠지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언덕을 올라 드디어 tv에서만 보던 끝이 없는 녹차밭! 늦가을이지만 아직도 푸른빛을 띠고 있어 마음속 깊은곳까지 녹차향이 전해진다.내려오면서 찻집에들려 시음도하며 녹차향의 매력에 정신없는 촌순이가 되었다.동안 마시던 녹차맛과는 아주 다르게 향도 은은하면서 맛 또한너무 일품이었다.(전두엽차라한다) 버스를타고 나오면서 근처 식당에서 녹차 삼겹살로 점심을!!역시 끝내주는맛~맛난 밥을먹고 순천 낙안읍성으로 출발!     낙안(樂安) 읍성(邑城)의 현재의 모습은 석성(石城)이지만 1397년에 처음 성을 만들 당시에는 흙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말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왜구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절도사였던 김빈길(金贇吉)이 사람들을 모아 낙안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그 후 1424년 9월부터 여러 해에 걸쳐 토성(土城)이었던 낙안 읍성을 석성(石城)으로 바꾸면서 그 규모도 넓혔다고 한다. 낙안 읍성의 성벽 위쪽에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통행로가 만들어져 있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이 통행로 주위에는 성벽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어 시설이 없는 것도 큰 특징이다.또한 1450년 성이 마무리될 당시에 '낙안 읍성의 둘레는 2,865척, 성벽의 높이는 9.5척이었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현재는 1984년부터 시행된 정비 사업으로 3개의 성문과 낙안 객사, 여러 가옥들이 복원되거나 정비되어 있다. 낙안 읍성은 사적 제302호이다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바쁘게 발길을 선암사로 옮겼다.벌써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선암사에 도착했을 때는 살며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선암사에 올라가는길이 옛친구처럼 정겹다.초겨울의찬바람을 가르며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마음속 깊은곳에 나를 인도하시는분의 마음이 전해졌다.조용히 침묵으로 대화하며 산길을 걷고 또걸었다.돌아오는길은 너무 길이 막혀 밤10시가 되어서야 대전에 도착했다.오늘 이늦가을의 외출은 참으로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오늘하루도 생명주심에~감사하며,좋은 만남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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